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여행의 문장들, 이희인

반응형

 '여행' 단어만 들어도 설렌다. 왜 그럴까? 인간은 원초적으로 여행하는 존재라고 한다. 굳이 구석기 시대를 들먹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동시에 떠돌고 싶은 방랑가적 기질이 있다. 안주하는 마음이 이기면 정착이 편해지고, 방랑가적 성향이 강하면 자꾸 집을 나선다.

 

이 책이 맘에 드는 이유는 먼저 '여행'이란 단어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문장' 때문이다. 여행과 문장이 만나 ''여행의 문장들'이 되었다. 광고 카피라이터로 십여 년을 밥벌이를 했다. 하지만 동시에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 곳곳을 찾았고, 이국 땅도 밟았다. 걸었고 밟아왔던 그 기억과 문장을 이 책에 담아 냈다.

 

  • 제목 여행의 문장들
  • 저자 이희인
  • 출판연도 2016년 7월 29일
  • 출판사 북노마드

 

이희인으로 검색하면 책이 참 많다. 이런 작가를 놓칠리가 없는데 혹시나 해서 더 찾았다. 그랬던 <여행자의 도서>가 낯익다. 그렇다. 내가 한 번은 읽은 작가다. 하지만 언제 읽었는지 무슨 내용인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표지는 정확히 기억한다. 그런데 왜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을까? 의아하다.

 

길과 길이 어떻게 만나고 이어지는가를 알게 되는 일은 행복합니다. 산과 산이 어떻게 어울려 산맥을 이루고, 강물과 강물이 어떻게 만나 거대한 바다로 나아가는지 목도하는 일은 경이롭기만 합니다. 세상의 길이 어떻게 만나는가를 더듬어 알고 발견하는 일이 여행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행자는 그래서 땅을 읽는 독서가입니다. 4

 

서문의 기록이다. 그는 여행가를 '땅을 읽는 독서가'로 소개한다. 여행가는 읽는 자이다. 이 책을 굳이 표현하자면 '문학여행'이라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책의 배경이 되는 곳을 찾아가고 그 문장을 되네이니 말이다.

 

네팔 룸비니를 찾았다. 

 

이보게, 고빈다, 내가 얻은 생각들 중의 하나는 바로, 지혜라는 것은 남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네. 지혜란 아무리 현인이 전달하더라도 일단 전달되면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다.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 할 수 없는 법이야.

헤르만 헷세 <싯다르타> 중에서

 

첫 장의 제목은 '여행으로 나를 이끈 문장들'이다. 책을 읽고 어떤 문장을 발견한다. 갑자기 가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문장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와 같은 여행이 있다면 꼭 그런 여행일 것이다"(p.39)

 

매력적인 문장이다. 미국 서부를 여행하며 남긴 글귀다. 읽는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할까? 아니다. '읽음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찾게 된다'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삶이 허망해 지는 이유는 책을 읽지 않아서이다. 독서는 존재를 풍요롭게 한다.

 

여행은 거칠고 피곤하다. 하지만 이희인이 그런 여행의 문장들은 청아하다. 때론 이른 봄처럼 회색빛이 가득한 들판에 옅은 노랑과 연두색이 살짝 덧칠 된 느낌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를 품고 오사카를 찾았다. 그리고 이렇게 표현한다.

 

그새 오사카에도 계절이 많이 흐른 것이다. 일상이 아닌 여행지에도 시간은 그렇게 저 혼자 흘러가는 것이다.(p.75)

 

책은 어렵지 않다.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다. 가끔 묵직한 울림이 있기는 하다. 책을 읽는 것도 여행이니 가끔 산도 넘고 강도 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전반적으로 평평하다. 흐릿한 봄안개 사이를 거니는 듯한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까? 책을 읽는 동안 낯설 지역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아마 작가의 털털한 문장 때문일 것이다.

반응형